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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읽다 목소리가 떨리자 딸이 한 말

그로잉곰 2026. 8. 3. 22:30

목차


    어느 날 잠자리에서 딸이랑 동시를 읽다가 목소리가 떨렸다. 그 순간, 딸이 예상치 못한 말을 건넸다.

    따뜻한 조명 아래 딸과 동시를 읽는 엄마

    음독, 눈으로 훑을 때 몰랐던 것

    아이들과 매일 밤 번갈아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처음 이 습관을 시작한 계기는 사실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저녁 두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지만, 책을 꾸준히 읽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꾸준히 읽어주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엄마의 목소리로 읽어주는 것은 꼭 필요한 행동이었지요. 그리고 아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읽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큰 아이에게 그냥 묵독으로 읽히지 않고, 소리를 내어 읽어줄 때는 눈으로 볼 땐 몰랐던 문장의 무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문장인데도, 눈으로 훑을 땐 그냥 지나쳤을 이야기가 목소리로 나오는 순간  마음에 다르게 와닿았던 것이죠. 문장 끝에서 숨을 고르는 순간,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다음 장을 기다리는 순간,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눈으로만 읽을 땐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저에게도 하루 중 가장 차분해지는 순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 정해진 순서대로 아이와 번갈아 읽다 보니, 서로 오늘은 무슨 책을 고를지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루틴이 됐습니다.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제 목소리로 무언가를 전하는 것도, 익숙해질수록 더 편안해졌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육아가 버거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길지 못했었는데요. 이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아이들과 읽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알림장 동시, 목소리가 떨렸던 그 한 줄

    그날 밤에도 여느 때처럼 딸과 나란히 누워 책을 펼쳤습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웠고, 작은 스탠드 조명만 켜둔 방 안은 조용했습니다. 딸이 오늘은 학교에서 받아온 알림장에 실린 짧은 동시를 읽고 싶다고 했습니다. 평소라면 그림책을 골랐을 텐데, 그날따라 알림장에 실린 그 동시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종이를 펼치며 딸이 먼저 제목을 소리 내어 읽었고, 저는 뒤이어 본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을 눈으로 대충 훑어봤을 땐 그냥 평범한 시 같았습니다. 짧은 문장 몇 줄로 이루어진, 흔히 볼 수 있는 동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딸과 함께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다가 한 구절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것도,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것도 그 자체로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수 있다는 그 시의 마음이, 눈으로 볼 땐 스쳐 지나갔는데 소리로 내뱉는 순간 갑자기 제 마음한 켠에 울림이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딸을 키우면서 완벽하지 않은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잔소리를 했던 순간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숙제를 미루던 날, 방을 어질러 놓은 날, 동생과 다투던 날. 그런 날마다 저는 딸의 부족한 모습을 유독 눈에 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을 먼저 짚어냈던 저의 모습이 그 짧은 시 한 줄 앞에서 부끄러워졌습니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 딸의 하루를 점검하듯 되짚어보던 저의 습관이, 어쩌면 아이에게는 또 다른 잣대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동시 한 편이,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더 따뜻하게 봐줘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일깨워줬습니다.

    목소리 떨리는 엄마한테 딸이 한 말

    목소리가 떨리는 걸 딸이 눈치챘습니다. 동시에서 눈을 떼고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대뜸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훅 들어온 그 한마디에, 저는 잠시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아직은 어렸던 그 아이가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뭔가를 느꼈다는 게, 그저 신기하고도 뭉클했습니다. 아이는 목소리에 담긴 감정만큼은 정확하게 알아챈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딸을 꼭 안아주고 싶었고, 많이 사랑해 주고 아껴줘야지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제 품 안에서 빙그레 웃으며 엄마랑 이렇게 책 읽을 때가 제일 좋다고 했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며칠 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잘 읽어줘야 한다는 부담도,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도, 그날 밤 딸의 웃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웃는 얼굴을 보면서, 저는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기로. 완벽하게 읽어주지 못해도, 목소리가 떨려도 괜찮다는 걸, 그날 딸의 웃음이 알려줬습니다. 요즘도 저녁마다 딸과 함께 책을 펼칩니다. 특별한 이벤트도, 대단한 계획도 없지만, 그 시간들이 우리 사이에 가장 확실한 약속처럼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