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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하은맘 작가의『십팔년 책육아』를 다시 꺼내 읽다가, 한 소제목 앞에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바로 "집에 꼭 책이 있어야 하는 이유"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이 책에는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아 읽는 내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를 모르고 빠져서 읽게 되곤 합니다. 집에는 내 책이 있어야 하고, 그 책에 자유롭게 적고 책 귀퉁이를 접어가며 생각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올바른 독서 습관을 잡아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정작 우리 집 거실에 책이 쌓여가는 이유에 대해 이토록 명쾌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오늘은 이 책의 지혜를 빌려, 10살과 4살 남매를 키우며 피부로 느끼는 '거실 책장'의 진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책은 '공부 도구'가 아니라 '환경'입니다
『십팔년 책육아』에서 강조하듯, 집에 책이 있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를 천재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책과 함께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아이들과 데이트를 하며 책을 직접 골라 보게 하고, 직접 고른 책을 빌려 와서 읽는 것도 도움은 되겠지만, 그 책이 진짜 나에게 온전히 흡수되려면 사서 책 귀퉁이를 접어가며, 적어가며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읽어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연스레 잊혀질 수 있는데, 잠깐 빌려온 책이라면 그 책이 내 마음에 내면화가 되기 쉬울까요?
도서관에는 저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곤 하는데요. 갈 때마다 아직 장난꾸러기인 4살 남자 아이와 함께 가면 쉼없이 사부작대며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고 뛰어 다니는 아들을 보며 곤혹을 치르기도 했어요. 아들에게 "도서관에서는 뛰면 안돼!", "계단에서는 사뿐사뿐 걷는거야"라고 이야기를 해도 그 때만 잠깐 듣는 것 같더니 또 뛰거나 돌발 행동을 하곤 했죠. 그럴때마다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오기를 수차례. 요즘은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아들을 눈에서 뗄 수가 없네요. 하루는 큰 딸 아이에게 "엄마 오늘은 너무 힘드니까, 이제 그만 갈까?"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도서관에서 나오기 전 도서관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꼭 먹고 가고 싶다며 엄마 손을 잡는 아이들. 이 시간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너무 애틋해 눈물 흘리며 "그 때로 다시 돌아가서 우리 애기 얼굴 한 번 만져보고 싶다" 하며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올까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 모두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의 관심사는 언제 어디서, 뭐 때문에 터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 산에 가서 우연히 개구리를 보고 온 날, 집에 개구리와 관련한 책이 있다면 그 날 그 책은 읽으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궁금해서 읽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집에 책을 들이면 당장은 보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그 책이 빛을 발할 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에서 잠깐 보고, 빌려서 딱 한 번 본 것과 반복해서 여러번 읽은 책.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까요?
두 아이가 있는 저희 집 거실은 매일이 우당탕탕입니다. 한창 글밥을 늘려가며 자신만의 취향을 확고히 다져가는 초등학교 3학년 첫째 옆에서, 4세 둘째는 누나의 책을 블록 삼아 높이 쌓기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와서 방해하러 오기도 하지요. 가끔은 책이 찢어지기도 하고, 온 거실이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져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이 난장판이 꽤 마음에 듭니다. 4살 아들에게 책은 지루하고 딱딱한 물건이 아니라 언제든 만지고 던져도 되는 친숙한 장난감으로 각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역시 동생의 방해 속에서도 거실 한구석에 배를 깔고 눕거나 아이스크림 미디어에서 산 독서쿠션 위에 책을 올리고 읽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책이 항상 그 자리에 있기에 내가 원할 때 꺼내어 읽을 수 있고, 책을 읽는 것이 숨쉬듯 당연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의 일상에 책을 스며들게 하는 소소한 팁
집에 책을 두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시작이지만, 아이들의 눈길을 한 번 더 끌게 만드는 작은 노하우들이 있습니다.
- 전면 책장과 바닥의 마법: 글을 아직 모르는 유아들에게는 책등만 꽂혀 있는 책장은 그저 벽지나 다름없습니다. 4살 아이의 시선이 닿는 낮은 전면 책장이나 놀이 매트 위에 표지가 정면으로 보이게 툭툭 놔두세요. 지나가다 표지의 그림만 보고도 덥석 집어 들게 됩니다.
- 집안 곳곳 '책 바구니' 지뢰밭 만들기: 거대한 책장 하나에 모든 책을 모아둘 필요는 없습니다. 10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자주 눕는 소파 옆, 화장실 변기 옆, 주방 식탁 위, 심지어 자동차 뒷좌석에도 작은 책 바구니를 두세요. 심심할 때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책이 있어야 습관이 됩니다.
- 장소와 상황에 맞는 '은근슬쩍 큐레이션': 실생활 공간과 책을 연결해 주는 방법입니다. 주방 식탁에는 요리나 음식과 관련된 그림책을, 베란다 화분 옆에는 자연 관찰 책을 놓아두는 식입니다. 일상과 책의 내용이 연결되면 아이들의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배가 됩니다.
- 주기적인 물갈이와 낯선 책의 발견: 아이가 특정 책들에 시들해졌다면 과감히 위치를 바꿔주세요. 그리고 첫째가 최근 푹 빠진 관심사(예: 추리, 역사 등)의 새로운 책이나 다음 학년 교과 연계 도서를 슬쩍 기존 책들 사이에 끼워 넣어보세요. '어, 이거 뭐지?' 하며 스스로 발견하는 기쁨을 주면 독서의 재미가 커집니다.
- 가장 강력한 환경, '책 읽는 부모'의 뒷모습: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장난감을 늘어놓고 놀 때, 먼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쳐보세요. 재미있다는 듯 큭큭 웃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두 아이 모두 양손에 책을 들고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배를 깔고 눕는 마법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집에 꼭 책이 있어야 하는 이유
제가 생각하는 집에 책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는, 훗날 아이들이 자라 세상의 수많은 고민과 마주했을 때, 엄마가 계시지 않을 때에도 혼자서 언제든 툭 털고 일어서 책 속에서 위로도 받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책 귀퉁이를 접어가며 메모하며 읽고, 독후감을 써내려가는 그 모든 행동들을 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이유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와 아이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홀로 오롯이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이 말은 아이에게도, 저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인 것 같아요. 오늘도 거실 바닥에 나뒹구는 책들을 부지런히 들어 읽히는 지금의 이 순간들이 훗날 우리 아이들의 단단한 마음 근육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 속에서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는 독서지도사 그로잉곰이었습니다.